인간의 조건에서의 기본 전제 중 하나는 적응력이다. 이런 적응력은 심리적·신체적 양면의 거의 모든 차원에 영향을 미친다. 오후에 극장에 들어가 있었던 때나 햇빛 비치는 밝은 낮에 어두운 곳에 있었던 때를 떠올려보자. 어두운 환경에서는 얼마 안 되는 빛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동공이 확장된다. 그러다 환한 밖으로 나오면 풍성한 빛이 확정된 동공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거북함을 일으켜 실눈을 뜨거나 눈을 가리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잠시 지나면 동공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햇빛의 강도에 적절한 정도로 축소되어, 햇빛의 강도가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와 별다르지 않아도 실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한다. 더울 때는 땀을 흘려 체온을 낮추고 추울 때는 몸을 떨어 열을 발생시킨다. 이 모두는 우리의 모이 기준선으로 복귀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생활환경에 대한 심리적 반응 역시 마찬가지이다. 새 휴대폰을 샀던 때를 떠올려보자. 처음엔 주변 사람들에게 새로 산 휴대폰을 자랑하고 싶을 만큼 들뜨지 않았는가? 처음엔 특정 앱과 카메라의 성능이 마음에 무척 들었을 테지만 얼마 안 지나 신기해하는 마음이 시들해지면서 그런 성능의 휴대폰을 쓰는 것이 당연시되기 마련이다. 문득 내가 스마트폰을 처음 사러 갔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판매 직원들은 16기가바이트 모델을 사라고 권했다. "저장 용량이 16기가라고요? 그렇게 많은 용량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나는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가장 적은 용량이 8기가바이트라는 얘기에, 더 놀랐다.
그때까지 내가 쓰던 여닫이형 휴대전화기의 저장 용량과 비교하면 8기가바이트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용량 같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습관처럼 수시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대고 낮 동안 걸음 수를 세어주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받거나 10일 후에 눈이 내릴 거라는 예보를 미리 알려주는 여러 기능의 앱에 익숙해지기 전의 얘기이다. 금세 8기가바이트의 용량이 다 차서 64기가바이트 모델로 업그레이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동공이 빛의 양에 맞춰 적응하듯이 우리의 심리도 모바일 기기의 '필요' 용량 들을 그 순간에 누리는 부유함이나 호사의 정도에 맞춰 적응한다. 복권 당첨자들은, 그러니까 이전까지만 해도 허황한 상상 속에나 존재하던 호사스러운 삶을 누릴 만한 큰 동을 얻게 된 사람들조차 1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그런 호화스러운 상황에 적응한다.
몇 년 전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의 주연을 맡으면서 수많은 이들이 평생토록 갈망해온 꿈을 이룬 21세기 여성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셀 수도 없이 젊은이들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루는 사람은 선택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여성이 휘황찬란한 불야성의 거리에서 뮤지컬 공연의 주연을 맡아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밤마다 공연을 편친 지 불과 석 달 만에 내놓은 공연 소감은 이렇다. 뭐랄까, 그냥 "작업 같은" 느낌이라는 두었다.
우리 인간은 상황에 익숙해진다. 심리학 용어로 쾌락 적응이라고 부른다. 브로드웨이에서 주지기 마련이다. 이런 패턴을 가리켜 쾌락의 쳇바퀴라고 일컫기도 한다. 아무리 대단한 호사와 부귀를 누리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당연히 누려야 할 수준을 따라잡는다.
우리의 행복은 자신의 실제 삶의 모습만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행복을 향상하려면 둘 중 한 방법을 택하여서 된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분자(자신이 가진 것)를 늘리거나 분모(자신이 원하는 것)를 줄이면 된다. 우리 대부분은 첫 번째 전략에 이미 익숙하다. 고소득 작업에 종사하고, 명품 '물건'으로 휘감고 다니며,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즐기는 모험과 가진 것들을 게시하면서 분자가 얼마나 커졌는지 과시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눈이 영화를 보고 햇빛 속으로 나오면 그에 맞춰 자동으로 적응하듯 행복감도 자신이 획득한 재산과 지위에 맞춰 적응한다. 현시대는 신상품, 더 높은 급여,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달리는 수십 개의 좋아요 가 새로운 일상이 되어 있다.
그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것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지난 50년 사이 1인당 소득 증가율이 물가상승률을 반영해도 세 배에 이르지만, 행복도는 여전히 그대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 우리는 가진 것이 더 많아졌지만 그만큼 기대치도 더 늘었다. 1960년대 생활은 당시에는 에어컨이나 식기세척기를 둔 집이 드물었다. 인스타그램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해봐야 폴라로이드 카메라 정도였고, 당시의 애플이나 블랙베리는 세계의 이모저모를 즉시 접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 아닌 파이 재료였다. 요즘엔 대다수 사람에게 그렇게 간소한 살림살이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낸 에어컨이나 밥을 먹고 설거지를 뚝딱 해치워주는 식기세척기가 없으면 불행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푸념이 나오기에 십상이다. 또 집에 와이파이 안 돼서, 피아노를 치는 고양이 사진이나 유명인들의 실수를 폭로하는 블로그 게시판에 바로바로 접속하지 못하다는 것 역시 생각도 못 할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사람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그럭저럭 살았다. 게다가 그때 그 사람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덜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어째서였을까? 우리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는 풍족한 생활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던 덕분에 가진 것이 별로 없이도 행복할 수 있었다.
수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을 위해서 풀어서 말하자면, 앞의 공식상 분모가 현재 훨씬 낮아서 행복의 값을 끌어내기 위해 분자가 그리 크지 않아도 되었다. 이전 세대들은 스마트폰도, 멋진 휴가도, 심지어 에어컨이 없어도, 소박한 라이프스타일로 행복한 삶을 누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우리 조부모 세대의 원하는 것의 범위도 당시의 기준에선 소소하지 않았다. 단지 현재 우리의 기준과 비교해서 소소한 것일 뿐이다. 현재의 기준에서 그들은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좋은 삶에 대한 기대에는 부합할 정도여서 분모와 분자가 균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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