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오해만 남기는 감정 기복에서 탈출하는 법 소위 '기분파'로 불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 문만 열고 들어가도 그가 오늘 어떤 기분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지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한숨을 자주 쉬고, 말수가 적고, 비관적이고 허무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반대로 기분이 좋은 날도 있지요. 행동이 크고 말이 빠릅니다. 낙관적이고 자신감이 넘치지요. 여러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주도합니다. 기분이 들뜬 나머지 준비도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럴 땐 기분이 나쁘지 않게 그를 잘 말려 줘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면 쉽게 조울증을 의심하곤 하는데, 정신과에서 바라보는 조울증은 이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조울증 진단이 내려지려면 조증과 울증이 상당 기간 지속되어야 하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증상이 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감정 기복은 조울증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려면 꽤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언제 화낼지, 언제 웃어 줄지 모르는 부모와 24시간 붙어 지내야 하는 아이의 심정을 떠올려 보세요. 아이는 내내 부모의 눈치를 살피느라 진땀을 뺄 겁니다. 어른들이 모여 있는 회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 자꾸만 감정이 삐져나오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닙니다. 무시하려고 애써도 그의 기분에 따라 내 기분도 오르락내리락하니까요. 감정 기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른이 될 수 없다. 어린아이는 슬퍼도 울고, 화가 나도 울고, 짜증이 나도 웁니다. 아직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미숙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른은 달라야 합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어른스럽다고 하지는 않지요. 어른이라면 감정과 행동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정이 요동쳐도 행동은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고, 다루는 방법은 거의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건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모르게 사소한 일로 버럭 화를 내고, 주위에 암울한 기운을 내뿜고, 비관적인 이야기로 분위기를 깨뜨린 적이 여러 번 있지 않나요?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후회하고 자책한 경험이 분명히 있을 테디요. 물론 정도가 심하지 않고 자주 일어나지 않으면 "저 사람이 인간적이라서 그래"하고 주변 사람들이 눈감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감정 기복도 제대로 알고 대처하지 않으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한번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 그것이 습관적으로 반복될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한번 매를 들면 계속 매를 들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감정 기복의 문제가 마냥 남의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에너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 때 '같이 확 사라져 버리고 싶다'라고 느껴도 행동으로 연결하지 않는 이상 엄마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 힘드니까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감정에까지 죄를 묻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우리에겐 무엇이든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의 문제는 완전히 구분해서 바라봐야 합니다. 옆 차선의 운전자가 위험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했다고 해서 보복 운전을 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화가 난다고 해서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없고, 억울하다고 해서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 권리가 없습니다. 이는 꼭 법으로 금지된 일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상사의 말이 기분 나쁘다고 해서 그에게 똑같은 복수 하거나, 애먼 부하 직원에게 화풀이해서 좋을 게 없습니다. 우선 감정의 행동화는 습관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번 회사에서 내키는 대로 화를 내 본 사람은 알 겁니다. 다음에도 똑같이 화를 내는 건 훨씬 쉽다는 사실을요. 한번 친구에게 우울감을 그대로 뿜어내고 나면 똑같이 그 친구 앞에서 우울하게 행동하기는 훨씬 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분이 좋을 땐 한없이 잘해 주다가, 기분이 안 좋으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됩니다. 한번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 행동에 제동을 걸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감정이 습관적으로 행동화하는 것을 막기가 어려울까요? 첫째는, 행동하는 당사자도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가 발로 공을 차면 공이 앞으로 굴러가듯이, 기분이 나쁘니까 우울해하고, 화가 나니까 언성이 높아지고, 짜증이 나니까 짜증을 냅니다. 그 사이에 '내가 왜 제멋대로 굴고 있지?'라는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갈대처럼 자극에 대해 반응할 뿐입니다.
둘째는, 마음속으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며 엄격하게 지적했다고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자기를 합리화하려 듭니다. 이 고리가 형성되면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막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런 행동은 습관으로 굳어지고, 결국 나는 화 잘 내는 사람,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 되어 버리지요. 그 결과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렇게 기분이 아닌 의지에 따라 행동합니다. 감정이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고 자기를 조절할 수 있다면, 비로소 감정에서 자유롭고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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