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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 '소외된 능동성'

by 전수봉 2022. 12. 19.

사람들이 전기 충격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베커 박사 2016년에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연구해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베커 박사는 45명을 대상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게 했는데, 참가자들은 모니터에 나타나는 여러 개의 바위 중 하나를 골라 뒤집었을 때 뱀이 나오면 약간의 전기 충격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즉 참가자 입장에선 뱀이 없는 바위를 뒤집어야 하는 게임이었지요. 그리고 게임의 수준을 세 단계로 조정했습니다. 첫째는 뱀이 없는 바위를 쉽게 찾아낼 수 있어서 전기 충격받을 확률이 0퍼센트에 가까웠습니다. 반대로 둘째는 무조건 뱀이 나와서 전기 충격받을 확률이 100퍼센트에 가까웠지요. 마지막으로 언제 뱀이 나올지 모르며 그 규칙 또한 끊임없이 바뀌도록 조종해서 참가자들이 전기 충격받을지 말지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리고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스트레스 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는데, 무조건 전기 충격받은 그룹보다 전기 충격받을지 말지 예측할 수 없었던 그룹의 스트레스 수치가 더 높게 나왔던 것입니다. 이 실험을 바탕으로 베커 박사는 사람들이 전기 충격보다 더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결과라도 예측이 가능하면 계획을 세워 대비할 수 있지만, 결과 자체가 불확실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통제 범위 바깥에 있다고 여겨서 불안감을 더욱 크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이 말해 주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무척 꺼립니다.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게 하지요. 나쁜 애인과의 연애를 끝내지 못하고, 형편없는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지옥 같다 하더라도 그 지옥의 풍경은 익숙하기에 견딜 만합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알 수 없는 미래입니다. 어쩌면 불확싷성을 마다하는 인간의 성향상 익숙한 지옥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점점 불확실성을 마다하는 인간의 성향상 익숙한 지옥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점점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윗세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어서 부모가 살던 대로 살면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다 죽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요즘 직업, 배우자, 가치관 등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해야 합니다. 더 힘든 점은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선택의 자유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됩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버스 카스트 말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던 속박의 상황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속박의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지요. 인생에서 마주하는 중요한 선택의 문제는 저마다의 답이 있을 뿐이지 옳은 답은 없기 때문이고, 대신 결정해 주는 순간의 자존감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성장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명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 무엇이든 스스로 내린 선택입니다. 삶은 온전히 자기 책임하에 두지 않으면 우리는 선택의 씁쓸한 결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잘못의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할 사람들만 늘어날 뿐이지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므로, 인생은 어렵고 힘듭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길을 피해 갈 마땅한 방법도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가슴에 끌어안고 각자의 방식으로 불확실성을 돌파해야 합니다. 인생을 뜻대로 한번 살아 봐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무의미와 허무, 무기력, 우울, 불안이 남은 삶을 지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려면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목표에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에서의 성취보다 사람 사이의 믿음과 돈독함이 더욱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면, 매일 야근할 게 아니라 적절한 시간에 퇴근해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두 가지를 전부 잘하겠다고 하면, 어느 것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자기 계발 분위기가 득세하는 요즘, 하나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굴도 멋지고 몸매도 훌륭하고 일도 잘하고 친구도 많은데, 왜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나 싶은 생각에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씁니다. 목표에 우선순위를 정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불안해합니다. 현대인들은 바쁠수록 능력 있고 인생을 잘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냥 분주하다고 해서 인생을 장 사는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분주함은 그의 마음이 불안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슬럼프에 빠진 운동선수는 훈련의 질을 점점 하기보다는 훈련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합니다.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일단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자기 기준이 불분명할수록, 이것도 저것도 다하려고 애쓰면서 분주하게만 살아가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런 현대인의 분주함을 '소외된 능동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능동성은 본래 내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소중하게 느끼는지 잘 아는 사람은 자기에게 중요한 일을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능동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분주함은 외부에 의해 끌려가는 것입니다. 불안에 떠밀려 바쁘게 움직일 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소외된 능동성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꾸만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으면 좋아하는 일을 탐색할 힘이 남지 않게 됩니다. 가만히 있자니 불안감이 버릇처럼 고개를 들 겁니다. 그때 습관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대응하지 말고 불안을 그냥 바라보세요. 불안은 바라보기만 해도 그 기세가 수그러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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