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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나를 심판하는 사람에서 나를 돌보는 사람으로 화살로 비유

by 전수봉 2022. 12. 11.

나를 심판하는 사람에서 나를 돌보는 사람으로 불교에서는 이를 두 개의 화살로 비유합니다. 첫 번째 화살은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화살입니다.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필연적인 감정이입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사회적 동물로서 갖는 자연스러운 욕망입니다. 

화살을 피해 가면 좋겠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꽂힌 첫 번째 화살입니다. 첫 번째 화살도 아픕니다. 그런데 정말 아픈 것은 두 번째 화살입니다.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에 대한 대응으로 내가 나에게 쏘아대는 화살입니다. '그깟 일도 제대로 못 한다니, 멍청하군', '바보같이 행동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돈을 내고 상담받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잖아, 역시 난 뭘 해도 안 돼' 등 어떤 문제에 체했을 때 내가 나에게 내리는 가혹한 판단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화살은 끊임없이 자기가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지요.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대응합니다. 첫째는 더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이고, 둘째는 자책과 우울의 수렁에 빠지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성실한 자신을 끝내 미워하고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당심은 당신의 어떤 면이 마음에 안 드나요? 잘 생각해 보세요. 그게 정말로 당신의 잘못 때문일까요?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만큼 살아온 것도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요? 인생에 돌부리가 아예 없으면 좋겠지만, 그걸 못 보고 넘어졌다고 해서 그게 당신 탓인가요? 돌부리에 걸렸는데 안 넘어지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요? 그러니 이제 자기 비난의 쳇바퀴에서 내려오세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넘어진 아이처럼 대해 보세요. 나를 심판하는 판사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프겠다, 괜찮아?"하고 말해 주세요. 앞서 말했듯 있는 그대로의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 나를 자꾸만 문제아로 만드는 두 번째 화살이 진짜 문제입니다.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 때 대응하는 방식으로, 자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남 탓하기'입니다. 남 탓하기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부모 탓하기'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혹은 부모님이 나를 너무 통제해서 온갖 나쁜 버릇에 시달리게 되었으므로 이 사태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을 탓할 때 분노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튀어 오릅니다. 마음속으로 상대를 나쁜 가해자로, 자신을 힘없는 희생자로 그리고, 그를 향해 날카로운 복수의 칼날을 벼립니다. 때로는 폭언, 폭행처럼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상대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만 해서 속을 긁는 수동적인 공격성으로 표현합니다. 지시한 일을 잊어버린 척 일부로 하지 않거나 망친 후에 왜 그랬냐고 다그치면 "나는 원래 그런 일에 서툴러요" 하고 대꾸하는 식입니다. 첫 번째 화살에 대한 대응으로 다른 사람을 탓하고 그에게 분노를 표출하면 그 당시에는 속이 후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아주 잠시뿐입니다. 화살의 책임을 특정한 누군가에게 돌리는 이상 분노의 불길은 끝내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돌부리가 나타날 때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당신 때문이야"라는 레퍼토리를 반복 재생하겠지요. 더욱 나쁜 점은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기 전까지 내가 겪는 나쁜 습관과 고통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가 당신 뜻대로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면 좋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장담하나요? 그의 뉘우침을 기다리는 동안 정말로 희생당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소중한 삶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탓하는 그 사람도 희생자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방치하는 부모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들 역시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에게 엄격한 부모의 과거를 거슬러 가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나를 아프게 한 그 역시 어떤 면에서 상처받을 사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로 책임을 전가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과연 책임 전가에는 끝이 있는 걸까요? 현재 겪고 있는 심리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한다면 남을 탓하는 행동도 멈춰야 합니다. 부모가 무책임했던 것도, 회사가 개인을 신경 쓰지 않는 기성세대가 경제를 파탄 낸 것도 전부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춘다면 내 삶이 달라질 게 없습니다. 부모가 용서를 구할 때까지, 회사가 달라질 때까지, 사회가 정의롭게 바뀔 때까지 원망하며 기다리는 일뿐이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탓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내 행동, 습관, 기분을 정당화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볼 때 느끼는 불한과 두려움을 남 탓하기를 통해 해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남을 탓할 게 아닙니다. 나를 못나고 부족하게 보는 차가운 그 시선을 고치면 됩니다. 아직은 어렵게 느껴질지 몰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 다른 사람을 탓함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정당화하려는 허무한 시도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처한 현실과 자기 자신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안타까운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와 타인과 세상을 탓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 에너지로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나에게 관대해집니다. 그리고 타인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게 되지요. 또 성취나 관계 면에서 세상살이가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그러고 보면 후회 없는 인생이 먼 미래에 있는 꿈이 아닙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닦달하고 다그치면서 앞으로만 달려갈 필요도 없지요. 지금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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