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처음 묘목을 심고 나서 쑥쑥 자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나무는 먼저 뿌리를 튼튼히 내리기 위해 온 힘을 집중합니다. 작은 일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줄기를 올리거나 잎을 더 틔우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 내리기에만 사용합니다. 나무마다 다르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기가 대략 5년쯤 됩니다. 나무라고 해서 급한 마음이 없진 않을 겁니다. 줄기를 쑥쑥 올리고 잎도 무성하게 피워 내야 햇볕을 잘 받고 그래야 더욱 크게 자랄 수 있으니까요. 만약 옆 나무가 먼저 자라서 햇볕 받기에 좋은 자리를 차지해 버리면 성장 과정이 더욱 힘겨워질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나무는, 그래도 5년 동안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만 신경을 씁니다. 옆 나무들이 얼마나 높게 자라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훗날 가뭄과 폭풍이 와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며, 결국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리가 튼튼한 사람은 무엇에 기대지 않고도 홀로 설 수 있습니다.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는 그를 지탱해 주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타인에, 세상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뿌리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보이는 부분, 이를테면 외모, 학벌, 경제력, 지위 들은 그다음입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채 외형만 키우다가는 한 번에 쓰러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뿌리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를 가장 그답게 만들어 주는 것 내면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돈도 많고 남부럽지 않게 성공도 거두었는데 극도의 공허감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지요. 그들은 가족도, 친구도, 직원들도 자기를 돈 벌어 오는 사람, 부탁하기 좋은 사람, 힘 있는 사람으로만 생각할 뿐, 있는 그대로의 자기로 받아들여 주지 않아서 괴롭다고 말합니다. 주어진 역할이나 명함이 아닌 그 자체로 사랑받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즉 뿌리가 썩으면 나무가 죽듯이 내면세계가 텅 비어 버린 채로 사람은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내면세계는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탐험하면서 구축해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신나며,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스스로 발견해야 합니다. 또 그런 자신을 좋아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힘을 자존감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나를 알고 믿는 훈련을 해 나가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굳게 마음먹으면 나에 대해 탐구하고, 원하는 삶을 계획하고, 나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 건강이 나빠지거나 가족이 사고를 당하면 왜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찾습니다. 권선징악을 믿는 사람은 '혹시 내가 잘못한 일이 있나?' 하며 원인을 찾으려고 할 테고 새옹지마를 믿는 사람은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다음엔 좋은 일이 있겠지' 하며 미래를 예측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어떻게든 세상을 자기 생각의 틀에 맞춰 이해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정말 힘들어하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모호함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를 둘러싼 타인들도 전부 '나'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입니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별것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정말 그런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를 그들의 시선에 맞출 필요도 없고, 그들의 시선을 고필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내 진짜 모습은 그게 아니야"라고 외쳐봐야, 그들은 또 다른 내 모습을 상상해서 만들어 낼 뿐입니다. 시선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지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 들이는 그 노력을 나를 돌보는 데 쓰는 게 현명합니다. 나를 제일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그런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삶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를 잘 알고 믿을수록 내면세계를 잘 가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를 잘 알 수 있을까요? 이것만큼 어려운 질문도 없습니다. 각자의 답이 있을 뿐 통용되는 정답은 애초에 없기 때문이고, 훈련을 거듭할수록 나은 답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내면세계를 단단히 만들어 가는 데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감정인데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첫째로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기 어렵고, 둘째로 감정을 제대로 인지할 만한 감정 언어가 부족하며, 셋째로 과거의 상처 때문에 과잉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앞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감정은 우리 삶의 엔진입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 그 자체이지요. 그 말인즉슨, 방향은 우리가 제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방향을 잃은 엔진은 기어이 사고를 내고 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느끼는 대로 행동할 게 아니라, 의지를 갖추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전조 증상을 아는 것은 감정 컨트롤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특히 감정이 행동화로 이어지는 습관이 굳어졌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분노의 불꽃이 튀는 순간 알아챌 새도 없이 화를 내고 후회했던 경험이 있나요? 만약 화라는 감정이 드는 순간을 인지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습관화된 행동을 멈추고 그것을 조절할 수 있었겠지요. 감정은 먼저 몸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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