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무례하다고 단정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 누구에게나 건드려지면 특별히 아픈 부분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그 부분이 자극받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아픔과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 부분은 예전에 생겨났지만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입니다. 낫지 않은 상처는 살짝만 건드려도 쓰라린 고통을 주지요. 그 고통은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상처가 건드려질 기미가 보이면 사람은 곧장 방어 태세를 갖춥니다. '나에게 상처 입히는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자극한 그에게 어떻게든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애초에 상처를 자극했을 뿐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수치심에 그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들고 모든 책임과 잘못을 떠넘깁니다. 더 나아가 보란 듯이 그를 무시하고 깔아뭉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처 위에 다시금 생채기가 나는 일을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원래의 상처가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오래된 상처는 다루기가 힘듭니다. 우선 당사자조차도 상처의 기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아픈 부분은 만 3세 이전에 부모에게 적절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경험, 뼈아프게 배신당했거나 중요한 사람을 잃은 경험 등에 비롯되는데, 이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무너뜨립니다. 그 상처는 너무나 아프고 쓰라려서 우리는 제대로 치료해 보지도 않은 채 묻어 둡니다. 스스로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우연한 경험이 과거의 상처를 상기시키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해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도 듭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과거의 상처를 들춰낸 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그가 무례하고 멍청하고 성격이 못되고 무고한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 과정은 의식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자동으로 습관적으로 흘러가지요. 그러나 분노하는 상황과 비난하는 대상만 바뀔 뿐, 비슷한 패턴으로 관계를 망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무례한 게 아니라 내게 예민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저는 과거의 상처를 '나'라는 자동차에 탄 '승객'에 비유합니다. 앞서 3장에서 설명한 비유를 기억하는지요. '인생'을 '도로'에, '살아가는 나'를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에 비유했습니다.
'나'라는 자동차는 '삶'이라는 도로를 출발하는 순간부터 승객을 태우기 시작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다른 형제와 지나치게 비교했다면 '비교로 인한 수치심' 이 내 자동차에 승객으로 탑승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헤어졌다면 '연락이 닿지 않을 때 안절부절못하는 불안감'이 내 자동차에 승객으로 탑승합니다. 이처럼 승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사건의 결과로, 우리 내부에 자리를 잡습니다. 평소에 승객은 얌전합니다.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조용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승객이 탑승하게 된 계기와 비슷한 자극을 느끼는 순간, 승객은 갑자기 활개를 치기 시작합니다. 운전자인 나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은 물론, 소리를 치고 난동을 부리며 운전자를 위협하고 차량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위험을 느낀 운전자는 어떻게든 승객을 말리려고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인 습관이 형성됩니다. 만약 당신이 비슷한 패턴으로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면, 눈앞의 대상에게 분노를 퍼부을 게 아니라 내 자동차에 어떤 승객이 타고 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난동 부리는 승객을 어떻게든 제지하고 싶기 때문에, 승객이 하라는 행동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승객이 아닌 눈앞의 상대에게서 찾기 시작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애먼 사람에게 죗값을 물어서 그와 잘 지낼 기회를 잃을뿐더러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하고, 오래된 상처도 치유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승객은 절대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입니다. 아무리 언성을 높이고 횡포를 부려도 승객은 승객일 뿐이며 절대로 내 자동차를 몰 수 없습니다. 상처가 너무 아파서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에도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습니다. 승객에게 압도당할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승객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서도 승객의 난동을 잠잠하게 만들기까지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처의 근원을 알고 나서도 비슷한 경험에 처할 때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와 억울함을 조절하기까지 상당한 훈련을 해야 했지요. 때론 그 과정에서 아예 승객을 무시하려고도 시도해 봅니다. 승객을 향해 "이제 내 차에서 내렸으면 좋겠어"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번 올라탄 승객은 결코 내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을 무효로 하려는 헛된 시도일 뿐입니다. 상처를 없는 척하면 상처는 덧나기 쉽습니다. 인생에서 크게 상처받을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 상처를 입었다면 그 흔적은 평생 함께 갈 거라고 마음먹는 게 편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잘 치유된 상처는 계속 아프지 않습니다. 상처의 근원을 이해하고, 상처로 인해 습관화된 행동 패턴을 인식하면, 승객은 크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면 승객이 많아도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승객의 요구 사항은 매우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그저 자기 존재를 바라봐 주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망치는 가장 강력한 적: 부정적인 생각 습관 (0) | 2022.12.11 |
---|---|
내 안의 상처를 현명하게 대하는 법 (0) | 2022.12.11 |
내 안의 분노와 평화롭게 지내는 법 관찰하는 나 (0) | 2022.12.08 |
삶에 관한 단 하나의 진실,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0) | 2022.12.04 |
우리 마음에는 상반되는 2가지 욕구 난공불락 (0) | 2022.1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