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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내 안의 분노와 평화롭게 지내는 법 관찰하는 나

by 전수봉 2022. 12. 8.

내 안의 분노와 평화롭게 지내는 법

첫째, 감정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감정은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격하게 튀어나오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사그라듭니다. 반대로 자꾸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할수록 감정은 날개를 단 듯 더욱 활개를 칩니다. 감정이 부정적인 생각을 줄줄이 끌고 오는 것이지요. '이런 일로 화를 내다니, 나는 너무 나약해'가거나 '저따위로 행동하다니 사람 나를 무시하나?' 같은 것들이 감정에 날개를 달아 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잘 따져 보세요. 감정이 나와 타인에 대한 평가로까지 이어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나요? 회를 내면 나약하다는 판단의 근거는 정확한가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굳이 나를 무시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 내가 화가 났네' 하고 담백하게 대응해 보세요. 그러면 소용돌이치던 감정도 차차 잦아들면서 알아서 멈춥니다. 

둘째,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따로 구분하지 마세요.

감각의 동물인 우리가 유쾌와 불쾌감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특정 감정을 묶어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일은 단순히 감각의 영역에 국한되어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판단이 개입하지요. 그리고 판단은 대체로 편견에 의해 좌우됩니다. 불교에서 예로부터 전해 오는 우화가 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여섯 사람이 모여 코끼리를 가운데 두고 실전을 벌입니다. 코끼리 정체에 대해서 말입니다. 첫 번째 사람이 몸통을 만지며 말합니다. "이건 거칠고 거대한 벽 같은 짐승이라네,"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이 이빨을 만지며 응수합니다. "아니야. 창처럼 날카로운 동물이야." "세 번째 사람은 코를 만지며 이렇게 말하지요. "둘 다 틀렸어. 이건 뱀 같아." "네 번째 사람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나무같이 둥글고 높은데 말하고, 다섯번째 사람은 귀를 만지며 "아니야. 꼭 부채 같아."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사람은 꼬리를 붙들고는 "다 틀렸어, 이건 밧줄 같은 동물이야"라고 소리칩니다. 그러고는 온종일 자기가 옳고 나머지는 모두 틀렸다며 말싸움을 합이다.

이 우화는 시야가 한정적이지만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 줍니다. 감정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로 교육받은 내용과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들어 감정을 구분합니다. 그 근거가 자기 경험에 한정되어 있음에도 한번 편견이 자리 잡히면 사람은 그에 부합하는 증거만 모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편견에 근거해서 감정을 판단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감정에 관해서는 판단의 삿대를 들이밀지 마세요. 앞서 말했듯 감정은 에너지이고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감정에 대해 잘못된 판단과 집착은 결국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감추는 습관으로 이어집니다.

셋째, 감정이 드는 순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감정이 판단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매우 자동적이어서, 그 고리를 끊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끊기는커녕 약화하는 것조차 힘들지요. 그래서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먼저 감정이 드는 순간 알아채야 합니다. 그래야 자동으로 반응하지 않지요. 그러려면 '감정을 느끼는 나'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그것을 '관찰하는 나'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마음 챙김에서 명상을 권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상할수록 '관찰하는 나'의 힘이 새겨서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먼저 그것을 살피게 되고 즉각 반응하기 전에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어느 때는 내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내 것이 아닌 듯 때가 많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자니 의도치 않게 불쾌한 감정들이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의 노예로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요. 감정을 주체적으로 잘 조절할수록 인생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아무리 화가 나는 순간에도 그 분노의 주인은 나 자신입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이 있나요? 특히 힘을 가진 윗사람이 이른바' 기분파'일 때 아랫사람에게 끼치는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런데 평범한 우리조차도 너무 쉽게 감정에 의존합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화가 나","애인이 전화를 안 받아서 불안해",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따분해"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이 말에는 '내가 그런 기분인 건 전부 상황 탓이야'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이렇게 기분을 정당화합니다.

'기분 정당화' 습관은 결국 삶을 상황에 종속시키게 만듭니다. 앞서 말했듯 살면서 마주하는 사건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특정 상황에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기분대로 행동하면 결국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아이에게, 연인에게,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기분대로 사는 것을 주체적인 삶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기분도 뜻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정은 죄가 없다, 감정에 대한 나의 감정이 문제일 뿐 사실 감정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감정에 대한 감정이 문제를 일으킬 뿐이지요. 부모에 대해 분노를 느끼면 '못돼 먹은 자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노를 감춥니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몰상식한 짓 생각하기 때문에 슬픔을 감춥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다른 가정으로 잘 포장해 놓아도 진짜 감정은 숨겨지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말지요. 그러므로 감정에 대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자꾸만 판단하려고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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